[한국고대사] 고구려의 국가형성
- 최초 등록일
- 2005.06.1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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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고구려의 형성
2.계루부의 대두와 5부제의 확립
1)계루부의 대두
2)5부제의 확립
3.고구려의 평양 천도
1)고구려의 평양경영
2)4~5세기 고구려사회의 대내적·대외적 정황
3)평양천도의 동기
본문내용
머리말
국가 형성의 문제를 발생학적 측면에서 연구할 때는 어느 단계부터 국가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가 따름에 따라 국가단계의 주요 지표들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단계의 주요 지표에 대한 한국 고대사학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제약 위에서 국가 단계의 주요 지표로서 5부제의 성립을 살펴보고 아울러 고구려 평양천도에 대해 고구려가 고대국가로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적 지배질서를 정비해가던 과정에서 평양천도를 단행한 동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고구려의 형성
청동기 시대 이래로 고구려의 주민들은 마을을 형성하고 농경을 주로 하며 생활하였다. 기원전 4-3세기 무렵 이후 철제농기구와 공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마을의 규모도 커졌다. 상호간의 교류가 생기면서 씨족 간, 씨족 내에서 우열이 나타나게 되었고 유력한 친족집단을 중심으로 지역정치집단이 형성되어갔다. 이 집단들을 중심으로 고을이 형성되었고 방어적 필요에 의해 고을 뒷산에 성을 쌓기도 하였다. 이러한 큰 촌락을 지칭해 ‘홀’ ‘골’ ‘구루’라 하였고 여기에서 고구려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위만조선의 세력이 뻗쳐왔고 한편 한(漢)나라 세력이 작용하여 한제국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였다. 漢은 기원전 107년 압록강 중류지역에 현토군(玄菟君)을 설치하여 고구려를 직접 지배하려 하였으나 고구려의 저항으로 기원전 75년 현토군의 중심지를 흥경․노성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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