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운동] 부산민주항쟁기념관 답사
- 최초 등록일
- 2005.06.03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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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주공원에 직접 가서 발췌한 글입니다
글 발췌해 온다고 좀 고생했는데 교수님이 잘했대요.
목차
▶김구 (1876-1949)
▶동포에게 호소하는 글....
▶전태일
▶ 항쟁의 시작
▶ 항쟁의 중심에서
▶민주의 탄생
▶4․19민주항쟁 일지
▶ 4월의 청년
▶1970년대 전반 민주화 운동 일지
▶박정희 그리고 유신
▶양서협동조합
▶ 부마민주항쟁일지
▶ 부마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일지
▶민주의승리
⇨ 리포트를 마치며
본문내용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한 노동자가 죽어갔다. 전태일 그는 너무나 착하고 한없이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기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당긴 스물 두 살의 젊은이는 불타는 몸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시키지 말라!”며 쓰러져서까지 절규하던 노동자 전태일...
청계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위협받는 비참한 모습을 보며 착취와 혹사에 분노, 잔인한 노동조건을 자신의 힘으로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로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노동현실을 고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근로기준법과 함께 산화하여 갔다. 전태일의 죽음은 열악한 노동자에게 자각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노동운동을 발전시키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 한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 한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김구선생은 통일 조국의 건설이야말로 진정한 민족 독립이라고 여기고, 남북 분단의 고착을 막기 위해 자신을 바쳤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하여 일어난 4.19민주항쟁은 나라의 주인이 백성임을 일깨운 항쟁이었다. 청년 전태일의 외침은 인간평등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의 절규였으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연결되는 단초를 만들었다. 이러한 민주의 뿌리를 자각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참된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자,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민주항쟁기념관 늘펼쳐보임방 안내도
양서협동조합 발기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