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모든것
- 최초 등록일
- 2005.05.30
- 최종 저작일
- 2005.04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시조의 형식
2.시조의 발생
3.시조의 종류
4.시조의 작가
5.시조집
6.시조의 발전
본문내용
이 당쟁으로 말미암은 유학도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이 시조 시형은 또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흠(申欽)·이항복(李恒福) 등의 작품에 드러나고 있는 당쟁에 대한 경계, 당쟁으로 인하여 희생된 인재들에 대한 애석함 등이 그 예가 된다. 마음이라는 추상적 실체를 구상화하여 스스로의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거나, 자기 수행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인 인간으로서의 자성(自省)을 표현하고 있는 서경덕·권호문·김구(金絿) 등의 작품도 이러한 당쟁의 와중에서 산출된 것들이다. 그러나 당쟁에 패배하고 먼 곳에서 귀양살이를 할 망정 이들 유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다. 체념과 허무 속에서 오히려 자기를 잃지 않고 낙관적인 관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유학도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지탱시켜준 것이 곧 그들의 충성심이었던 것이다. 비록 역사의 추이에 따라 소재는 변할지라도 군주에 대한 충의만은 변하지 않는 주제의 정착성, 이것이 유학도의 서정시인 시조 문학의 특징적인 성격이며, 시조 문학이 지닌 바 그 역사적인 기능이었다. 조선전기의 시조가 지니고 있던 이러한 특징은 16세게 후반에 이르면서 세 갈래의 지향점을 발견하고, 그 세 방향에서 각기 우수한 작품을 산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등이 대표하는 것으로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선행시키고 있는 조선 전기의 자연에 대한 유학자들의 태도가 도달할 수 있는 고아한 품격과 자연에 투영된 인생관의 한 극치를 시조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철의 <훈민가>가 대표하는 것으로서 유교적인 윤리관을 주제로 하되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쓰여진 토속적인 언어 기교를 시조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황진이로 대표되는 기녀(妓女)들의 작품들로서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애정의 형상화가 시조시형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