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연구] 효종대왕의 북벌론
- 최초 등록일
- 2005.05.30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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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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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북벌과 국가안보
2. 북벌
(1) 인조반정
(2)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3) 효종과 북벌
(4) 효종의 북벌론과 송시열의 북벌론
(5) 좌절된 북벌
3. 북벌의 평가 및 현재 우리 국가안보의 방향
본문내용
(3) 효종과 북벌
그럼 북벌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효종은 누구인가? 효종은 조선 제17대 임금으로서 인조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인연왕후이다. 인조 4년에 봉림대군에 봉하였으며 병자호란이 끝난 뒤 형 소현세자 및 많은 관료들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청나라에서 많은 고생을 겪다가 8년만인 1645년 돌아와서 1649년 인조가 죽자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오랫동안 청나라에서 머무르면서 자기의 뜻과는 관계없이 서쪽으로는 몽고, 남쪽으로는 산하이와, 금국위 동보산까지 나아가 명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였기 때문에 청나라에 대한 원한과 조정의 배청분위기와 함께 북벌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청나라와 연결된 김자점 등의 친청파를 파직시키고 김상헌, 김검, 송시열, 송준길등 대청 강경파를 중용하여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완, 우혁민, 원두표등의 무장을 중용하여 북벌을 위한 군비확충을 본격화 하였다. 즉, 1652년 북벌의 선봉부대인 어영청을 대폭 개편, 강화하고 금군을 기병화하는 동시에 1655년에는 모든 금군을 내삼청에 통합하고, 600여명의 군액을 1000명으로 증액하여 왕권강화에 노력하였다. 또한 남한산성을 근거지로 하는 수어청을 재강화하여 서울 외곽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중앙군인 어영군을 2만, 훈련도감을 1만으로 증액하고자 하였으나 재정이 이에 따르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참고 자료
참고자료〉
국가 안보론 -육군사관학교- (시영사) 2001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김영사) 2000년
조선왕조사 -이성무- (동방미디어) 1998
아야가 조선상고사 -교양국사연구회- (청아출판사) 1997
국방백서 -국방부- (국방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