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 한국 사회 교육열
- 최초 등록일
- 2005.05.29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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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교육열의 전개 양상
2.교육열의 형성 배경 및 요인
- 감투의식
- 학력주의
- 집단주의적 지위의식과 서열 위주의 일원적 가치관
- 가족주의
- 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구조
3. 교육열의 사회적 영향
결론
본문내용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교육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의 많은 부분이 문화적 전통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열의 전개 양상
조선시대의 유교적 입신양명은 역사적 삶을 통해서 양명(揚名)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 즉 주로 양반이 갖고 있었던 삶의 목표였다. 조선시대 양명지향적 교육관은 입신양명에 필요한 자질, 즉 관료적 역할과 학자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습득하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의 일차적 관심은 그들의 자제들을 과거시험에 합격시켜 관료로 진출시키는 것에 있었다. 이에 양반가문의 자제들은 어릴때부터 철저한 과거시험 준비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과거시험 준비교육은 보통 6~7세에서 시작하여 과거에 합격하거나 단념하는 그날까지 20,30년 이상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가 실패로 끝을 맺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입시제도가 온 가족과 친척들의 관심이 되는 것과 유사하게 조선시대의 과거시험도 가문적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입시 지옥에 지내왔던 우리들도 옛날에는 그 고통이 덜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옛 문집 속에서 “부모님의 간청에 못이겨 과거에 응시하였다”라는 글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교육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은 명문대나 전문직의 과를 선택하기 위해서 삼수, 사수 이상을 입시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도 합격자 평균 나이가 32~33세인 것을 보면 오늘날로 보자면 10수이상을 해서 겨우 과거에 합격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