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수원화성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5.05.26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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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원화성 답사 보고서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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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라는 우리 식 도르래를 이용해서 만든 곳, 선조들의 과학이 새겨져있는 곳 등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해보고 있을 때 내가 처음 본 것은 수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 이었다.
바로 이동한 곳은 정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화령전이었다.
나는 전주에서 컸는데, 전주에 있는 ‘경기전’에는 조선 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사실 전주에 살 때는 알 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 보관되어 있는 어진은 이곳 수원과 전주뿐이라고 했다.
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기에 조금은 화려한 건물을 기대했으나, 화령전은 지극히 소박하고 깔끔했다. 함께 답사를 하게 된 수원시에서 오신 선생님께서 설명하시길, 정조 대왕께서 평소 검박한 생활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그의 어진을 모신 곳 까지도 검박하게 지었다고 하였다. 중국의 문화재를 보면 놀라울 만큼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나도 작고 검소한 우리 문화재에 대해 열등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이 주는 아니지 않을까? 그걸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정조 대왕의 어진을 향해 인사하고 난 후 그 모습을 똑똑히 바라봤을 때였다. 약간 야윈 듯 하면서 학자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습 속에 숨겨진 위엄, 화령전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사실 어진에 그려진 모습이 실제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푸른 나무에 빛나는 물결이 조상의 슬기와 사랑이 담긴 화성을 더욱더 아름답게 감싸주는 듯 했다.
문화재의 답사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문화재에 얽힌 수많은 일들, 탄생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제작과정, 그리고 사용된 사건들을 통해 문화재에 새겨진 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수원 화성 답사는 정조 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효심, 그리고 백성을 향한 사랑과 바른 정치를 하려는 임금의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부분 훼손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가 남아있는 이 화성을 잘 보전해야겠다고 느꼈다.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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