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제재 사례
- 최초 등록일
- 2005.05.22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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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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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제재의 전개
■ 성공과 실패
■ 성공의 쇠퇴 및 제재의 전망
본문내용
■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제재의 전개
미국은 최초 1938년 영국과 제휴하여 경제제재로서 제3세계에 개입하였다. 국유화 조치한 영국과 미국 석유회사의 재산에 대해 보상토록 하기 위해 멕시코에 대해 1938~1947년의 9년간에 걸친 금융 및 무역제재가 가해졌던 것이다. 이외에 1944~1947년 동안 아르헨티나를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발생한 58개 사례 중 1970년대에는 단독으로 거의 40%를 차지하였다. 거의 과반수의 사례는 라틴아메리카를 대상으로 한 제재였고, 중동이나 남아시아는 25%, 나머지는 아프리카와 동아시아(4개 사례는 베트남과 관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戰後의 세계를 구미에 맞게 만들기 위하여 미국의 비협조적인 국가를 강압하고 심지어 붕괴시키기 위해 경제적 수단(economic leverage)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27년간 제재노력은 신흥독립국가들의 민족주의자나 좌익지도자들을 완화시키거나 전복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 기간 중(21년 중 9년간) 거의 과반수 사례에서 미국은 그러한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였다. 이 사례의 1/3은 몰수되거나 국유화된 재산에 대한 분쟁(또한 과반수는 붕괴노력에 있어서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둔 몇몇 사례를 포함하는 비교적 온건한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두 번의 미국 군사적 조치를 수반한 것과 한 번의 다른 경우의 제재는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지 않았던 군사적 갈등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시도에서 사용되었다.
최초 사례의 하나는 독일에 대항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헨티나의 협조 부족에 대한 미국의 불만으로부터 발생하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나치에 대한 동조 때문에, 그리고 후에는 그의 민족주의자적 언동과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협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쥬안 페론(Juan Peron) 대통령을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진전되었다. 미국 외교정책의 초점으로서 동서냉전이 연합국과 구축국간의 열전을 대체했을 때, 미국은 빈번하게 라오스의 소반나 포우마(Souvana Phouma) 왕자, 도미니카공화국의 라파엘 트루질로(Rafael Trujillo)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아키메드 수카르노(Achmed Sukarno) 대통령 같은 너무 독립적이고 너무 좌파주의자로 고려된 지도자들에 대한 제재노력을 취했다. 그 외에 라오스의 포우미 노사반(Phoumi Nosavan) 장군과 베트남의 고 딘 디엠(Ngo Dinh Diem) 같은 지도자들에게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이유가 아닌 워싱턴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적 투쟁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과도한 야망이나 부패 때문에 제재를 해야 할 책무로 간주됐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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