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오토와그너
- 최초 등록일
- 2005.05.21
- 최종 저작일
- 2004.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와그너는 1841년 7월13일에 빈 근교 펜칭에서 태어났다. 1857년 빈 공대에 입학했고 1860년에 베를린 왕립 건축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빈으로 돌아와 자기 분야의 수공업적 작업을 익히기 위해 몇 달간 미장이 견습공 노릇을 했다. 1861~1963년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계속 공부를 했고 푀르스터 아틀리에로 들어가서 최초의 독자적인 설계를 맡았다. 1863년 요제피네 돔하르트와 결혼했다.
1863년경 독립. 초기의 작품은 분명히 고전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세기말의 건축, 특히 빈 시 철도의 몇개의 역(1894 - 1897)의 디자인에는 아르누보적 수법이 인정된다.
1866년 빈의 알베르트 대공작을 위해서 농업 및 임업 전시회를 기획했고 1867~1871년에는 테오필한센과 함께 일했다. 이시기에 빈 국제박람회를 위한 엡슈타인 궁전과 러시아 해군 전시관이 나왔다. 1880년에 요제피네와 이혼했고 같은 해에 어머니가 사망했다.
1894년에 와그너는 빈 미술 아카데미 정교수가 되었다. 동시에 건축 감독관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빈 시가철도 건설을 위한 미술 고문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작업의 영역에는 30개의 정거장 건물, 교량, 구름다리들이 포함된다.
오토 와그너는 ‘현대건축’이라는 제목의 선언서를 1896년에 출간했다. 그는 여기에 포함된 요구, 곧 건축이 동시대 삶의 조건에 적응해야 한다는 요구를 우체국 저축은행 건설에서 성공적으로 실현해 보였다. 1899년 빈 분리파 운동에 합류했고 1900년에 매킨토시와 반 데 벨테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해에 카를 광장과 프란츠 요제프 황제 박물관 프로젝트를 둘러싼 13년 간에 걸친 싸움이 시작되었다. 1905년에 그는 클림트, 호프만, 그 밖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분리파 운동에서 탈퇴한다.
참고 자료
-서양건축사 <기문당>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생각의 나무>
-20세기 건축<해냄>
-공간(space) <공간>
-인터넷(문화채널21)<http://bookian.yes24.com>
-외국 인터넷 사이트<http://www.greatbuildings.com/architects/Otto_Wagner.html>
-그외 인터넷 검색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