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전문학의 이해]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 최초 등록일
- 2005.05.2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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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송강 정철의 생애
2. 원문
3. 원문 분석
① 사미인의 서곡
② 독수 공방
③ 봄의 정한
④ 여름의 정한
⑤ 가을의 정한
⑥ 겨울의 정한
⑦ 결사
4. 결사 내용의 분석
①시간성의 의미
②‘범나븨’의 상징적 의미
본문내용
1. 송강 정철의 생애
송강 정철(1536~1593)은 조선시대 중종 때에 태어나서 주로 선조 때에 활동한 학자이면서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그의 누이들은 왕실에 출가하여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정철의 나이 10세 때에는 을사사화가 일어나서 처참한 가화를 입었다. 자형 계림군은 처형되고 부친은 유배되었으며 맏형은 유배 도중 심한 매를 맞아 죽고 둘째형은 순천으로 피신하여 은거하였다. 정철은 배워야 함을 깨닫고 큰 학자인 김인후의 문하에 들었으며 김윤재, 기대승 등을 좇아 학문을 익혔다. 한시는 임억령에게 수학하였고, 가사는 송순의 영향을 받아 대성하였으며, 성혼과 이이와는 친교를 두터이 하고, 김성원, 고경명 등과는 시적 교류를 긴밀히 하여 흥미진진한 시적 풍류를 누리는 등 당대의 명류들과 인간적 인연을 깊이 하였다. 정철은 2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계에 나아간 후 우의정, 또는 좌의정까지 역임하는 등 나라의 요직에서 경국제민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노력하였고, 중요 외직으로 강원도 관찰사, 또는 전라도 관찰사 등의 중책을 맡아 위국 애민의 큰 뜻을 펴기도 하여 정치가다운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당쟁으로 정론의 대치와 갈등이 심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현실 참여의 의지가 강한 그에게 수다한 먹구름을 끼어 얹었다. 관계에서의 추방과 외딴 곳으로의 유배가 바로 그것이다. 정철은 출사 이후 본의 아닌 낙남이 적지 아니하였다. 전남 창평으로의 낙향이 네 차례나 있었으며, 40세, 44세, 46세 그리고 50세에 남녘으로 내려온 것 모두 정계에서 방축된 불우한 삶이었다. 56세 때는 북녘 땅 강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고 종말에는 나라의 정승을 지낸 그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빈곤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인생 역정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정철이 송강정을 짓고 경영하기 시작한 것은 네 번째 낙향하였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정철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제작하였다. 그는 그의 시가에 외로운 고신의 처지에서 연주의 언어로써 품위있게 불렀고, 충군 애국을 다하는 지극한 마음에서 연군지정을 형상화하였다. 그의 시가 문학은 국문학사상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정철은 생애에 가사 4편과 시조는 약 80수 그리고 한시는 740수를 지었다.
참고 자료
<미인곡의 산실 송강정> 박준규,최한선 저 태학사
<한국가사학사> 김기중 저 이회문화사
<松江文學論考> 최태호 저 도서출판 영락
<송강 정철 시가의 수용사적 탐색> 최규수 저 도서출판 월인
<한국 고전문학의 이해> 장덕순 저 박이정 <한국문학통사·2> 조동일 저 지식산업사 <송강 문학 연구> 신경림·이은봉·조규익 편저 국학자료원
<송강 정철의 시문학> 김갑기 저 이화문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