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 위험한관계] 라클로 위험한 관계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5.05.15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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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1
목차
1. 작품선전배경
2. 불륜소설의 원조적 성격
3. 작가와 작품
4. 포인트
5. 위험한 관계의 등장인물과 줄거리
6. 위험한 관계를 읽고 난 뒤
본문내용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는 1741년 북프랑스의 아매앵이라는 도시에서 지위가 별로 높지 않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미천한 귀족출신으로서 군인으로 이름을 떨치려면 포병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에 라클로는 열 여덟 살 때 라페르 포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해서 장교로 임관한 후 그는 툴, 스트라스불, 그르노블(이 지역 출신의 작가 스탕달에 따르면 이 도시의 사교계가 ‘위험한 관계’의 실제적인 모델이라고 한다), 브장송, 발랑스 등의 도시로 자주 근무지를 바꿨다. 이는 그의 가문이 낮고 재력도 빈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클로는 1779년 포병 대위로 있을 때 로슈포르 앞 바다에 있는 엑스 섬에 파견되어 성 쌓는 일을 지휘했다. 이 일이 군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에는 대단한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그는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위험한 관계’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782년 4월에 출간되었는데, 나오자마자 한 달 사이에 2천부나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독서계의 형편으로 이 정도의 부수가 한 달 동안 팔린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에 부수가 한 달 동안 팔린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에 못지 않게 작품의 내용 때문에 일어난 물의도 상당히 커서 라클로는 파리에서 곧 라로셀로 돌아와서 축성작업에 종사했다. 라클로는 43세 때 라로셀 시의 일류 사교계를 드나들었는데, 여기서 마리 수랑주 뒤페레라는 열 여덟 살 처녀를 알게 되었다. 이 처녀는 라클로의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은 3년 뒤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라클로는 모범적인 남편과 가장으로서 원만하게 가정을 이끌었다고 한다.
1789년 혁명 당시 라클로는 오를레앙 공의 비서로 고용되기도 했으며, 1792년에는 당통 밑에서 행정부 감사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여단장직을 맡으면서 ‘공동탄’이라는 새로운 폭탄의 발명에 참여했다고도 한다. 공포정치시대에는 오를레앙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석방되었고, 감옥에서 나와 혁명의 기원과 목적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1800년대에 보타파르트 집정관은 공포정치시대의 라클로의 역할을 높게 평가해서 그를 라인 여단 사령관으로 파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