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남연군묘 답사기 - 대원군의 숨결을 찾아
- 최초 등록일
- 2005.05.14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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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진 파일도 많고 정말 세심하게 작성했습니다.
남연군묘에 대한 사실적 여행을 있는 그대로 담았습니다.
목차
1. 남연군묘를 생각하며
2. 남연군묘를 찾아서
3. 남연군묘까지의 시골길
4. 남연군묘에 오르니..
5. 풍수지리학적 고찰
6. 오페르트가 어떻게 왔다 갔을까
본문내용
▣ 남연군묘(南燕君墓)를 생각하며..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남연군묘는 19세기 말의 당시 대내외적인 조선의 운명을 대변하듯 그렇게 남아 있다. 밖으로부터 계속되는 외세의 통상과 개방의 요구와 그에 따른 잦은 해안 침범을 비롯하여 조선 내부적으로도 직면하고 있던 체제의 불안정성, 민심의 동요 등은 앞으로도 점점 더 어려워질 국가의 운명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조선 근대기 역사의 수난은 이 ‘남연군묘(南燕君墓)’에 ‘오페르트’ 라는 독일인과 함께 우리의 기억 한 자리에 남아 있다. ⌜19세기 조선의 개방과 21세기 국제화 환경⌟강의에서도 물론 ‘강화도 조약’ 체결 이전 ‘흥선 대원군’의 쇄국 시기를 공부할 때, 이 남연군묘가 등장하였다. 교수님께서 그 곳에 대한 사진도 보여주시고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지리적인 배경까지도 설명해 주시며 “이게 어디에 있는지 아나?”라고 몇몇의 학생에게 질문하셨지만, 우린 거의 모르는 분위기였다. 그냥 나도 왕의 아버지 무덤이고 하니, 한성이나 경기도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은 약간 의외였는데 왜냐하면 충남 예산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왕 일가의 무덤치곤 한성과 너무 먼데?! 하지만 그 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그렇게 명당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이 (풍수지리를 믿었을 것이다.) 일부로 명당자리인 지금의 자리로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옮긴 것 이다. 교수님께서 “역사 공부도 하고, 경치도 좋고, 또 풍수로도 좋고 하니 한번쯤 가보는 것도 괜찮다.” 라고 하셔 그 순간 난 꼭 한번 가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민족의 대학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유적이 어디 있는지를 몰랐다는 어쩌면 스스로의 반성도 그에 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 집에 내려갈 때, 잠깐 시간 내서 역사 공부도 하고, 명당 구경도 하고, 한적한 시골과 산을 거닐며 경치 구경도 하고, 오페르트가 어떻게 왔다가 도망갔을지도 탐구해볼 겸(흥미롭게) 꼭 그곳에 가보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