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세조 대 왕권과 신권의 갈등
- 최초 등록일
- 2005.05.11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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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Ⅱ. 시대적 상황
1. 태종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2. 세종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3. 문종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4. 단종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Ⅲ.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1. 세조의 재능
2. 세종, 문종 시절 수양대군의 활동
3. 계유정난까지
Ⅳ. 세조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 세조의 왕권 강화책
1. 의정부 재상들의 비정상적 권력 확대
2. 육조직계제의 시행
3. 공신집단의 우대
Ⅴ. 못 다 이룬 절대 왕권의 꿈과 신권의 부각
본문내용
Ⅱ. 시대적 배경
1. 태종代의 왕권과 신권과의 관계
일반적으로 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유지한 시대로 인식되고 있다. 그 예로 외척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해 처남인 민씨 4형제와 양녕대군의 장인 김한로일가, 심지어 세종의 장인 심온 일가를 처형한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왕 혼자서만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선역사상 가장 많은 친인척이 포진된 관료로 정권을 이끌어나가는 모순된 행위를 보여준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돈관계인 외척인데, 이것은 태종이 부인(12명)과 자손(29명)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태종은 태조의 직계가 아닌 왕족은 일반 문무관리처럼 벼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아 정권 초기 허약한 왕실을 튼튼히 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와 같이 태종 정권의 특징은 근원간의 친인척이 폭넓게 포진하고 있는 점인데 이것은 누가 또 정권에 불만을 품고 역모나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측근기용이 친인척중심인 것 같다. 이것은 조대림 사건에서도 나타나듯이 종친을 끝까지 병권(兵權)에 참여시켰고, 중용했다. 또한 혼인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들의 인맥속으로 파고들고 그들과 왕가를 공동운명체로 만들었다. 그는 측근과 심복인 소수집단을 이용하여 그들의 어느 정도의 특권과 비리를 용납하는 충분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측근 정치를 한다고 해도 정부의 전 관료를 측근과 인척으로 채우거나 평생 몇 명의 인간만 만나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독특한 방법으로 주변 인물들을 다루었다. 자신과 그들 간에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륜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총신을 이용하면서도 국가의 백년대계가 소수 특권집단의 편협한 이기주의에 침몰하는 것을 억제하였다.
태종은 어느 정도의 권문세가를 옹호하면서 관료제, 정치운영상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늘 견제했다. 당시는 정계와 공신집단이 여러 그룹으로 분리되어 있고 개별 집단의 규모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이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몇 번씩 숙청을 하고 술수를 쓰고, 세자에게 양위하겠다는 쇼까지 하면서 끌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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