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이 18홀인 유래
- 최초 등록일
- 2005.05.08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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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골프장이 18홀로 만들어진 유래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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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것은 차치하고 골프가 게임으로서 세상에 나온 초창기에 홀수는 코스의 넓이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제각기 달랐다. 제1회의 오픈 챔피언 쉽(전영오픈)은 1860년 프레스트위크에서 개최되고 이후 10회 대회까지 쭉 이 프레스트위크에서 행해졌다. 제 1회의 챔피언인 윌리 퍼커, 이어서 올드 톰 모리스가 2년 연속 우승하고 다시 퍼크와 모리스가 우승을 번갈아 거듭한 후 1868년부터 모리스의 아들인 영톰 모리스가 3년 계속해서 타이틀을 낚아냈다. 화려한 역사를 아로새긴 당시 그 무대가 된 프레스트위크의 골프코스는 12홀이었다. 그 후 1872년부터 오픈의 개최코스는 프레스트위크, 세인트앤드류스, 매설버러의 세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세 곳을 클럽으로 말하면 1)프레스트위크 클럽, 2)로열 앤드 에이션 세인트앤드류스 클럽, 3)오너라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즈. 이상의 3개의 클럽이다. 그리고 이 공식코스의 원점이라고도 할 만한 3개코스의 홀수는 1)프레스트위크는 12홀, 2)의 로열 앤드 에이션트가 18홀 ,3)의 오너라블 컴퍼니가 9홀 이었다. 그래서 프레스트위크에서 오픈을 할 때는 3라운드. 로열 앤드 에이션트에서는 2라운드, 오너라블 컴퍼니에서는 4라운드의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해서 어느 클럽에서 행해도 똑같은 홀수(36홀)가 되게끔 정해졌던 것이다. 이런 초창기 바로 전인 1850년 무렵 거터퍼쳐의 볼이 발명되어 골프가 급속히 보급되었다. 값싸고 오래가는 볼이 생긴 덕택인데 이 때문에 골프코스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1850년 당시 세계에(거의 대부분이 스코틀랜드)겨우 20개 정도밖에 없었던 골프코스가 그 50년 후인1900년에는 300개를 헤아릴 정도로 증가됐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골프코스에서는 앞 다투어 18홀의 골프장으로 해 나갔다. 즉 세인트앤드류스의 코스가 패셔너블하였으며 대부분의 코스가 이 홀수를 흉내내어 그것이 세계 중에 널리 퍼져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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