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학] 주거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
- 최초 등록일
- 2005.05.07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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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래에 대해서 알려면 과거를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미래의 주거 방향에 대해 살펴보기 전 지금까지의 우리의 주거문화가 어떠하였는지 간단히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이 이 세상에 생겨난 이후에 인간의 삶에 중요한 문제도 대두된 것이 의식주 문제이다. 사냥을 통해서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물의 살코기로 식의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주의 문제, 살 곳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냥을 하여 남는 음식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고 사냥하다 지치면 쉴 곳이 필요하게 되었고 비가 오면 비를 바람이 불면 바람을 피할 곳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주, 즉 살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개인이라는 개체를 극복하고 집단이라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주거문화는 더욱 발전되었다. 개인이라는 개체는 자기 몸 하나 피할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 존재였지만 공동체 생활을 위해서는 모든 이가 지낼만한 곳이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동굴이라는 피난처를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공동체가 더욱 켜지면서 급기야 동굴은 비좁게 되었고 원시인들은 처음으로 집의 개념이라 들 수 있는 ‘움집, 막집ꡑ을 짓게 된다. 이 시대의 좋은 집이란 개념은 좀더 따뜻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정도의 개념이었다. 그 후, 삼국시대를 거쳐 시대가 흘러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좋은 집의 개념이 서서히 바뀌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기와집'이 고급주택이었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지어 기능적이고 독특한 예술적 가치가 빼어났다. 갈대나 볏짚을 엮어 지붕을 올린 `초가집'은 민가라 불렀다. 백성이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서민들이 살았던 집이다. 이밖에 땅을 파 반지하 형식으로 지었던 `움막집'과 아무렇게나 지은 `막살이 집'이 있었다. `작다'는 의미의 `오'자를 앞에 달아 `오막살이집'으로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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