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박헌영] 박헌영과 김일성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5.06
- 최종 저작일
- 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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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논문입니다.
목차
I. 서론
1. 문제의 제기
2. 연구의방법
3. 선행연구와 현 연구와의 차이
4. 현 연구의 제한점
Ⅱ. 본론
1. 박헌영은 누구인가?
2. 김일성은 누구인가?
3. 전쟁 중의 김일성과 박헌영
4. 전쟁 후의 김일성과 박헌영
5. 박헌영의 죽음의 의문점
6. 박헌영과 남로당의 숙청의 결과
III. 결론
본문내용
것 같다. 세 번째. 박헌영이 기록에 의하면 간첩혐의는 시인하면서도 무장폭동음모에 대해서는 관련을 부인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장폭동, 국가전복 등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보아서 박현영은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는 기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인정여부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새 정부와 새 당의 조직에 관한 것과 무장폭동 음모에 직접 참가하거나 그러한 범행을 조직 지도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 부문에 관한 책임을 지기 곤란합니다. 기타 기소 사실은 전부 승인한다”고 대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신의 범죄에 대한 진술에서 박헌영은 다시 “끝으로 말씀드릴 것은 저의 공범자들인 이승엽 등의 신정부 조직 음모라는가 무장폭동 음모에는 제가 직접 참석치도 않았고 그 사실도 알지 못하나 나의 밑에서 범죄활동을 하여온 자들이라는 점에서 저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가 최후 진술에서는 ”... 조직 음모라든가 무장 폭동 음모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저에게 없는 것 같이 진술한 부분은 한계 궤변으로 잘못된 것이기에 취소합니다“라고 번복한다. 그는 그러한 범죄활동을 계획하고 주도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소장에서 말하듯” 남반부 지역에서의 테로 학살 행위들은 전적으로 박헌영의 지도 밑에서 감행되었음이 예심에서 판명되었을 뿐이다“ 여기서 지도라는 의미는 매우 애매모호하다. 기소장의 ”박헌영의 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행위는 그의 반혁명 도당의 가장 핵심분자들인 이승엽의 지도 하에 공화국 정권 전복을 위한 무장 쿠데타 음모를 추진시키는 데 직접 도움을 주었다(최고재판소)라는 분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박헌영의 무장폭동 음모에 대한 직접적 참여가 없었음을 입증한다. 이렇게 보면 박헌영은 어떤 강압과 속임수에 의하여 자신의 간첩활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책임만을 인정한 것이었다. 권오직은 증인 신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박헌영에 대한 죄악을 열거하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박헌영이 간첩활동 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권오직은 박헌영의 모든 죄악이 “종파 사상에 지배되어 감행된 것이라고” 진술할 뿐이다. 그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박헌영의 간첩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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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노동당 전략 - 김정곤 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 서대숙 저 청계연구소 1989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ⅠⅡ - 박명림 저 나남출판 1996년
북한의 권력구조 형성과 유일체제의 확립 - 염복규(서울대 국사학과 석사졸)
분단 전후의 현대사 - 브로스 커밍스 일월서각 1983년
분단과 민족 - 손건호 지식산업사 1986년
남로당연구 - 김남식 돌베개 1984년
한국전쟁의 기원 -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주환 옮김 청사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