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과 스모
- 최초 등록일
- 2005.04.29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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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씨름과 스모의 유래비교
★씨름과 스모의 경기방법 비교
★씨름과 스모의 승부 및 제한시간
★씨름과 스모의 시설비교
★씨름과 스모의 심판 비교
본문내용
★씨름과 스모의 유래비교
▷씨름의 유래
씨름은 인류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은 자기의 보호수단 내지 종족보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투쟁하였고, 소극적인 방어에서 생존과 식생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공격 행위가 체계화되어 투기종목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단오절, 백중날, 한가위 때에 강변모래사장이나 시골장터, 마을 한가운데에서 열리던 경기였다.
승자에게는 부상으로 황소가 주어져, 우승자는 황소를 타고 마을을 돌며 천사장사임을 과시하여 축제분위기의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 서울 남산에 있는 산단앞 잔디밭에서의 단오날(수릿날) 씨름은 볼만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정식 씨름경기는 1912년, 유각권 구락부의 주최로 단성사에서 최초로 열린 이후, 암흑의 일제시대에도 민족의 놀이로서 끊임없이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여 왔고, 최근에는 프로씨름이 등장하면서 더욱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스모의 유래
스모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國技)로서 몽골과 우리나라의 씨름의 영향을 받아 토착화한 전통 스포츠로 본래 신앙상의 점으로 어느 쪽이 이겼느냐에 따라 생산의 길흉을 점쳤다는 것이 그 기원입니다. 옛날에는 진혼-매장-복식-의례의 4대 의식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는 행사였으며 스모 선수들의 몸집이 비대한 것도 여기서 기인한 것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라는 설도 있습니다.
8세기 초에 편찬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스모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스모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운동경기입니다. 그 후로도 나라시대에는 조정행사의 하나로 정착되어 가마쿠라시대에는 무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장려되었으며 에도시대에는 서민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으며 대중화되었고, 직업 역사(力士)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에도시대 에는 지나친 사행성으로 국가에서 스모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가 18세기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에 걸쳐 지금과 같은 경기제도와 규칙을 확립하였고 오늘날에는 일본 스모 협회까지 결성되어 매우 조직적으로 프로 스모 경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