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서양철학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계기
- 최초 등록일
- 2005.04.18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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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중세말기
■르네상스
■신비주의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원인
●루터의 개혁
●칼뱅의 개혁
●역사적 의의
■자연과학의 발달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결론
본문내용
■ 중세 말기
중세 말기에 로마교회가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자 로마교회의 권위는 다른 지역의 교회보다 월등히 강하게 되었다. 이는 베드로나 바울의 사역지이며, 로마가 당시 정치적․지리적인 중심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 지역의 교회보타 그 권위가 우위적 입장이 되어갔고, 결국엔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세계 교회지배라는 계급적 교회체제가 형성되었다. 교권체제가 절대적 위치에서 권력을 휘두르게 되자 성경적 교회관이나 말씀의 권위는 점점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치부하게 되었고 제도화된 교회는 바로 신국과 일치되었다. 의식과 형식, 제도 중심의 사제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교회의 부패는 갈수록 그 속도를 더해만 갔다.
중세 교회의 타락의 원인의 다른 한 가지 요인은 교회의 세속 권력과의 타협 제휴였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에서 비잔틴으로 수도를 천도한 때부터 로마교회의 세속권력과의 타협은 싹트고 있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군사적 힘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서로마 제국이 패망하자 로마교회는 어떤 다른 힘의 보호가 필요했다. 결국 당시 교회는 프랑크 왕국과 손을 잡았고, 그 후 로마교회는 교회의 위협과 이교도의 세력확장을 저지할 목적으로 부단히 세속의 정치력과 군사력에 의존하였으며 왕위 찬탈전에도 깊숙히 간여하면서 타협, 거래, 협조, 동반하는 자리로 빠져갔다.
교회의 붕괴는 철학보다 외적인 사건에 의해 더 촉진되었다. 중세의 교황권은 어느 누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였으나 중세 말기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교황이 아비뇽에 붙잡혀 있는 일로 인해 그 권위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특히 교황 레오는 교회 건축과 장식에 재정을 낭비하였고, 모자란 재정을 채우기 위해 교회 관직을 만들어서 팔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참고 자료
※ 서양철학사(스털링 P. 램프레히트 지음. 을유문화사)
※ 서양근세철학 베이컨에서 칸트까지(강대석 지음. 서광사)
※ 네이버 지식인(http://kin.naver.com/open100/r_entry.php?rid=77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