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클린턴
- 최초 등록일
- 2005.03.24
- 최종 저작일
- 2002.10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힐러리가 없었다면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까지 해가며 그렇게 국정을 잘 수행 할 수가 있었을까?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이 섹스스캔들로 곤경에 처할때마다 헐리우드 배우처럼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 남편과 키스 하는 장면을 외부에 노출시킴으로써 부부 사이가 무사함을 확인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 '매직 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큰 고비를 두 번 넘겼다. 첫째는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 후 의료 보호 개혁을 직접 지휘하다가 반대에 부딪혀 무산 됬을때고 둘째는 불법정치 자금모금과 관련된 화이트워터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힐러리와 동업으로 법률회사를 운영하던 빈센트 포스터가 갑자기 자살한 사건이었다. 의료 보호 개혁은 미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지만 예산문제가 복잡해 누구도 손대기 어려웠다. 힐러리 여사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에 관여해 이 문제를 손수 해결하려는 의욕을 드러냈다가 각료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곤경에 빠졌다. 의료 보호 개혁 실패 후에는 전문직 여성의 상징인 쇼 커트 머리를 약간 긴 단발로 바꾸고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 하는 등 전업주부의 유연한 모습으로 겉모습을 바꾸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전문직의 잘난 퍼스트 레이디보다 전임인 바바라 부시처럼 살림과 내조 잘하는 퍼스트 레이디를 좋아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이러한 연출은 내조 잘하는 보통의 퍼스트레이디로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포지셔닝후에는 남편의 집무에 참견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내조하는 모습을 보여 사랑받는 퍼스트 레이디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그녀는 변화무쌍하며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맞출수 있는 여자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