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업 역사] 조선 전,후기 상공업비교
- 최초 등록일
- 2005.03.11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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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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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조선시대 상업의 형태와 특징
(1) 조선전기 상업의 형태
(2)육의전과 금난전권(禁難廛權)
(3)대동법의 실시와 공인의 등장
Ⅱ. 조선시대 수공업의 형태와 특징
1. 조선전기 관영수공업
2. 조선후기 민간수공업
Ⅲ.조선후기의 상공업발달과 한계
(1)조선후기의 상업발달
(2)상인의 등장과 활동
(3)사상도고의 등장과 활동
(4)상업자본의 형성
(5)후기이후 한말의 상공업
본문내용
Ⅰ. 조선시대 상업의 형태와 특징
조선시대 상업은 발달하지 못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국초 이래로 농본주의를 국시(國是)로 하여 공업의 발달을 억압하고 상업의 자유로운 신장을 방해하였으며, 지방의 생산력이 빈약하고 교통의 불편으로 상업거래가 번영치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고 아울러 상업상의 과세에서 가렴주구가 심하였고, 도시에서의 어용상인, 지방에서의 시장상인에게 각각 상업상의 툭권을 부여함으로써 일반 상고(商賈)의 자유로운 발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상업은 농업과 가내 수공업이 밀접히 결합되어 있던 만큼 극히 일부의 임시적인 교환이 각 개인간에 이루어진 것 이외에 전국적으로 1천여를 헤아리는 향시가 그 지배적인 형태였으나, 약간 진보된 상업 형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① 도시 상업기관으로 공랑상점(公廊商店)인 시전(市廛)과 거기에서 발달된 육의전, 그리고 개성·평양 등 도시의 상설점포 등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정부 및 여러 관아의 수요품을 공급하기 위하여 발생·유지된 것이라고 하겠다.
② 객주·여각이 지방도시의 화물집산지에 존재함으로써, 화물의 도매·화물보관의 창고업·위탁판매업·화물의 운송업·고객의 편리를 도모하는 금융업 등을 겸하는 상업기관의 구실을 하였다.
③ 행상(주로 보부상)이 있는데, 이들은 상업 집산지에서 구입한 일용 잡화물을 등에 지거나 보로 싸서 지방 향시 또는 산간벽지를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였다.
(1) 조선전기 상업의 형태
조선왕조시대의 상설시장(常設市場)으로서의 시전(市廛)은 서울이나 평양·개성, 그리고 정조(正祖) 때 조성된 수원 등 몇 곳의 도시에만 있었고 다른 지방의 시장은 원칙적으로 5일마다 열리는 정기장시(定期場市)였다. 서울 시전의 경우를 예로 들면 상인들에 의한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건설한 당초 정부에 의해 시전 건물이 건축되었고 시전상인들은 이 건물에서 정부의 일정한 보호 아래 영업을 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1. 강만길, 《조선 상업자본의 발달》, 고려대학교출판부
2. 이영훈,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한길사
3. 송찬식,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의 연구》, 일조각
4. 오성, 《조선 상인의 연구》,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