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중국의 지배계층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3.06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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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秦) 말기에 진승, 오광이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무장들이 봉기하였다. 한고조 유방도 이러한 무장 중 하나였다. 유방은 원래 농가태생으로 장년에 진의 하급관리가 되었으며 진시황릉의 공사에 인부 호송 책임을 담당했었다.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하자 유방도 패땅에서 패공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후 항양(항우의 숙부), 항우와 연합세력을 구축하여 진나라를 타도하였는데 항우의 군대가 진의 주력부대와 전투를 벌이는 사이 유방은 항우보다 먼저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고 진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이보다 조금 늦게 함양에 이른 항우는 홍문에서 유방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아방궁을 불태웠으며 팽성에 도읍하여 서초패왕이라 칭하였다. 유방은 BC 206년 항우로부터 한왕으로 봉해졌으나, 그 후 4년 동안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장양, 한신 등의 도움을 받아 해하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장안에 도읍하였다.(BC 202년) 한 왕조의 통치조직은 대체로 진을 이어받은 군현제가 중심이었으나 한 왕조 건설에 공이 큰 공신들은 제후왕과 열후로 봉해졌다. 이것이 이른 바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합시킨 군국제이다. 하지만 유방 생전에 공신들이 모두 멸망함으로써 제후왕은 모두 유씨가 봉해지게 된다. 그후 제후황은 한왕일족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5대 문제는 여씨 외척세력을 모두 축출해내고 백성을 위한 통치에 힘써 사마천으로부터 인제라는 평가를 들었다. 6대 경제 때에 이르러서는 내정이 안정되어 국고가 풍족해졌으며 조착을 등용하여 제후권력을 통제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오초7국의 난이 일어났으며 난이 평정된 이후에는 제후왕의 세력을 삭감하였다. 7대 무제 때에는 제후왕의 통치 권력이 완전히 없어지고 군국제는 군현제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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