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처리장에 대한 고찰 - 부안사태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5.01.25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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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움이 되었음 좋겠네여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해서 좋은 결과 얻으세여
목차
ꊱ 정부의 방폐장 유치 과정
ꊲ 부안 사태의 원인과 진행과정
ꊳ 부안사태 해결책으로 등장한 주민투표
ꊴ 주민투표 결과와 그 의미
ꊵ 부안사태의 해결과 방폐장 유치의 현재상황.
ꊶ 방폐장에 대한 찬․반 논의와 앞으로의 과제
본문내용
ꊳ 부안사태 해결책으로 등장한 주민투표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유치신청과 산업자원부, 한수원의 비민주적인 사업추진에 주민들이 반발하자정부가 강경 진압을 했고, 그로 인한 정부와 주민간의 충돌로 많은 구속자와 부상자들이 양산되었다. 그러면서 부안 사태의 해법으로 제시되기 시작한 것이 주민투표이다. 주민투표는 이미 2003년 8월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이 제안한 바 있었고(당시에 김두관 장관은 주민투표를 2003년 가을이나 연말쯤에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고건 국무총리도 부안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부안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기구로 2003년10월 16일 정부와ꡐ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이하ꡐ반대대책위ꡑ라 한다)ꡑ 및 추천인사 3인으로 구성된ꡐ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ꡑ에서도 2003년 10월 24일부터 1주일 간격으로 회의를 하면서 주민투표가 해법으로 논의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2003년 11월 19일 고건 총리가 연내 주민투표 실시가 가능하다고 발언했다가, 이를 취소하는 등의 혼선도 있었다. 그러나 부안 사태의 해법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주민투표의 실시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투표실시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반대대책위는 독자적인 주민투표를 추진하게 되었고, 전국의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에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관리해 줄ꡐ주민투표관리위원회ꡑ의 구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부안 사태의 조속한 해결에 동의하던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에서 참여한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이하ꡐ부안 주민투표관리위원회ꡑ라 한다)가 구성되었고, 2월 14일 민간차원의 독자적인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참고 자료
1. 시민사회 저녈 제 13 호, 국가정책결정과 주민참여 -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분장사태를 중심으로. 하승수.
2. 경향신문. 04.09.15일자, 정부 불신만 키운채 방폐장 ꡐ20년 허송ꡑ, 김윤순 기자.
3. 한겨레 신문. 04.09.16일자, 방폐장 터 선정ꡐ사회합의ꡑ추진. 전주/박임근 기자.
4. 오마이 뉴스. 부안 사태․핵폐기장 선정무산 일지,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