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5.01.04
- 최종 저작일
- 2004.09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발생,구분
2. 구성
3.운영
4.연희
5 현황
본문내용
1.발생(發生), 구분(構分)
남사당패란 1900년초 이전에 있어서 서민층의 생활군단 (生活群團)에서 자연발생적 또는 자연발전적으로 생성한 민중놀이 집단을 일컫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집단은 권력 주변에 기행하였던 지배계층이 주관했던 관노, 관원놀이와는 달리 그 유지와 구성이 어려웠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어느 때부터 민중놀이집단 남사당패가 생겨났는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알고자 그 방법을 문헌적 고구(考究)에만 의존할 때, 그것은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을 곧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껏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중사의 기록을 갖지 못하였 고, 또 이 방면의 관심마저 일천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이앙법이 시행된 이후로 잉여 생산물이 풍족하게 됨으로써 상공업의 발전을 촉진시켰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터이다. 하지만 농촌사회의 문화도 경제력 못지않게 심각한 양상을 띠고 전개 되었다.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두가지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유리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적떼에 동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농민층의 분화과정은 17,8세기의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점차로 자신들이 역사의 주체임을 자각하며 민중의 염원을 담아내는 것이다.
한편 남사당패의 연원을 말하기에 앞서 정리되어야 할 것은 서로 유사한 성격의 패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사당패, 걸립패, 남사당패 등에 관한 분별이다. 전해오는 전적(典籍)에서나 일반적인 인식이 특히 사당패와 남사당패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사당패와 걸립패의 관계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한 상태에서 이들 패거리간의 관계나 독자적 성격 따위는 확증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