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메이션] 미야자키하야오
- 최초 등록일
- 2005.01.03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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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야자키하야오의 생애, 작품세계, 성공이유, 작품에 담긴 사상과 느낌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각 작품의 이미지도 함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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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일본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작가이다. 그가 예술가로서 평가받는 것은 그의 작품이 상업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이고 섬세하고 뛰어난 영감으로 다양한 모티브들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 그 작품들에 나타난 사상에 관해서 살펴보자.
1941년 도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 회사를 경영하는 큰아버지, 공장장인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과정을 거쳤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테크닉을 배우기 위해 미술전문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거부했던 그는 학습원 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택했다. 미야자키는 대학 시절 만화에 뜻을 두고 만화연재를 시작했다. 여기서 이후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느끼게 될 여러가지 가치관들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의 청소년판인 <소년소녀신문>에서 <사막의 백성>이란 제목의 만화를 기고했는데, 그 작품은 SF와 마르크시즘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이같은 대학 시절의 이념은 잔재로 남아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에서 그려지는 아나키스트적 공간, 독재비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의 현대문명에 대한 저항 등으로 표현된다. 미야자키는 졸업 후 도에이 동화의 공채에 합격해 본격적인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들게 된다. 후에 그는 인터뷰에서 입사 이유를 “미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회사 노조에서 활동하던 중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난다. 미야자키는 다카하타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과 <팬더, 아기팬더>에 메인스탭으로 참가했다. 그 둘은 당시 상업영화가 시도하지 못했던 획기적 실험들을 시도하지만, 회사와 심한 마찰을 겪기도 했다. 1971년 그는 회사를 옮겨 A프로덕션에 입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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