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과 쿠바 미사일위기] d-13과 쿠바 미사일 위기
- 최초 등록일
- 2005.01.02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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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시 쿠바는 친미파인 바티스타 집권기에 제당공장의 50%~60%는 미국인 소유였다. 그 외에도 미국의 자본은 담배, 과실류, 운송, 전기, 전신 및 은행 등을 쿠바 경제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민족주의자 카스트로가 1956년 86명의 동지들과 게릴라전을 전개, 1959년 2월 바티스타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권을 세워 총리가 되었다. 총리에 취임한 후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자본을 접수하는 등 사회개혁을 진행하였으며, 그 해 9월 제1차 아바나선언을 발표하여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제창하였다. 미국의 쿠바에 대한 설탕, 광산업 지배가 축소되자 미국은 타격을 받고, 미국은 카스트로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키는 모습을 보이자 공산주의자로 간주하면서 1961년 외교가 단절되기에 이른다. 이에 쿠바가 냉전의 경계선이 되고, 미국의 케네디는 카스트로의 반미주의를 무시하면서 제거계획을 세운다. 카스트로는 소련에 더욱더 밀착함으로써 미국에 저항하였다. 1961년 4월 초, 케네디는 쿠바 침공계획을 승인하고, CIA의 훈련을 받은 망명 쿠바인들의 쿠바 침공을 명령했다. 1,453명의 쿠바인 특공대는 CIA의 훈련을 받은 후 피그 만에 상륙했으나, 철처한 패배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140명은 사망하고, 1100명이 포로로 잡혀 미국은 몸값 천만불을 지급하게 된다.흐루시초프는 피그만 침공이후 군비경쟁에서 열세 극복위해 쿠바에 소련제 중거리 핵 미사일을 설치하나, 1962년 10월 14일 미 U2 기가 쿠바 미사일 기지를 촬영하지만 소련은 사실을 부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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