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 중세 국어의 문자와 표기법
- 최초 등록일
- 2004.12.20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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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세국어는 기본 자음 20개와 단모음 7개의 음운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음체계는 폐쇄음 계열에서 氣音化와 喉頭化를 대립으로 하는 3지적 상관속(三肢的 相關束)을 형성하며, 마찰음 계열에서는 후두화의 대립으로 2지적 상관속을 형성한다. 자음의 합용병서는 경음을 나타냈고 각자병서는 유성음의 표기로 보인다. 단모음은 ‘이’를 無關母音으로 후설 ‘아․․오’대 비후설 ‘어․으․우’ 모음이 상관적 대립을 이루고, 이러한 대립은 당시 모음조화와 일치한다. 훈민정음 초기에는 종성으로 8개가 쓰였으나, 16세기를 넘기며 語末 內波작용이 일어나 ㄷ과 ㅅ이 중화되었으므로 7개의 종성으로 바뀌었다. 경음화와 격음화 현상도 뚜렷해졌는데, 격음화는 경음화보다 다소 늦게 확대된 듯하다. 구개음화와 비음화 작용은 15세기에 드물게 나타나나 16세기를 지나면서 세력이 커졌고, 이 시기에 기미를 보이는 두음법칙 현상은 더욱 뒤늦어 18세기에 가서야 보편화되었다. 중기국어 말기에 가면 ‘’음의 소실을 경험한다. 우선 제 2음절 이하에서 ‘ㅡ'모음으로 변동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설모음 대 비후설 모음끼리 대립을 갖던 모음조화가 체계에 균형을 잃고 엄격성이 약해져갔다. 중국어의 四聲에 따라 평․상․거․입성의 성조를 보이는 중기국어는 음의 고저와 장단에서 변별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6세기를 넘어 점차 의미상 변별력을 상실하면서 체계가 문란해지고 근대 국어에 들어서는 표기도 사라졌다. 국어의 한자음은 대략 6~7세기 경 隨․唐 초기의 切韻音系인 北方 中原音이 기층을 이루고 있는데, 훈민정음 반포 직후에는 현실 중국음으로 돌이키려는 동국정운식의 한자음 개신의 시도가 있었으나 얼마 안 가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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