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국전쟁당시의 여성첩보원
- 최초 등록일
- 2004.12.19
- 최종 저작일
- 2004.10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HID와 제1교육대
2.여성 첩보원들의 활동
3.여성 첩보원들의 모집 방법
본문내용
한국 전쟁은 첩보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첩보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여성 첩보원들의 역할과 공은 매우 켰다.
초기에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었지만 한계가 있었고, 신빙성의 문제도 있었으므로 미국 CIA가 개입되어 첩보전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굴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은 한국에서 첩보활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CIA요원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활동할 새로운 첩보원을 양성시켜야만 했다.
처음에는 남성들을 위주로 구성이 되었으나, 활동에 있어서 제약을 받고 의심의 여지가 많아서 실패확률이 높았다. 그리하여 여성 첩보원을 찾게 된 것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수입할 수 있었다. 특히 그들 중 외모와 지략이 뛰어난 18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특수 첩보원( - 래빗)들은 그러한 점들을 이용하여 인민군 장교들과 가까워지며 그들에게 고급 정보를 빼내었다.
다음의 내용은 당시 첩보활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 내용이다.
- 이순옥
: 나는 당시 10대의 소녀였다. 당시 군인이었던 오빠의 권유에 의해 처음으로 북한 군대에서 정보를 빼내게 되었다. 그 내용을 오빠에게 알려주면 오빠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알려서 작전을 세우곤 했고, 또 나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전해졌다. 나는 후에 유격대 소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는데, 특히 낙하교육을 많이 받았다. 그것은 북쪽으로 보내질때, 주로 비행기에서 낙하하여 정해진 위치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몇날 며칠을 걸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해야 했고, 그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나는 밥을 뭉쳐 보자기에 싸가지고 다니며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