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전쟁
- 최초 등록일
- 2004.12.16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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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머리말
2.의병전쟁
1)의병전쟁의 제기
2)의병전쟁의 확산
3)독립군의로의 전환
3.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894년부터 1915년에 이르기까지 20년 간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그들은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무력으로써 외국세력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병활동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국내활동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의병의 전개과정과 활동, 그리고 결과와 남긴 의미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 의병의 재기
1904~1905년에 일제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자 의병이 다시 일어났다. 일제는 1904년 2월의 한일의정서와 8월의 제1차 한일협약 등을 체결하여 한국 내에 자국군을 주둔시켰으며, 일본인을 한국관리로 임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내정은 일제에 의해 장악되었는데, 특히 1905년 11월에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은 모든 한국인을 격분시킬 만큼 충격적이었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이 박탈되어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에 반대한 한국인들은 항의의 표시로 자결하는가 하면, 이른바 매국노라 불리는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하여 오적암살단이나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애국지사들에 의해 구국을 위한 의병의 봉기가 잇따랐다.
이 무렵에 의병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체로 양반유생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1894~1896년 사이에 의병에 참여한 바 있었다. 다만 전기의병과 다른 점이라면 대규모 의진의 경우 전직관료들이 의병을 일으킨 사례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중기의병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는, 강원도의 원용팔, 경기도의 이문호, 충남의 민종식, 전북의 최익현, 임병찬, 양한규, 전남의 백낙구, 고광순, 양회일, 경상도의 신돌석, 정용기, 이현규, 유시연, 황해도의 이진룡 등을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한국근대사연구회, 1997, 『한국근대사강의』, 한울아카데미.
조동걸, 1989, 『한말의병전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편, 1990, 『의병전쟁연구』상, 지식산업사.
홍순권, 1994,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 서울대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