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개항을 둘러싼 국제정세
- 최초 등록일
- 2004.12.15
- 최종 저작일
- 2002.10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근대로 넘어가기위해 넘어야 했던 산으로만 인식했던 개항에의 의미를 심각하고, 깊게 재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항을 통해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서구열강들과의 관계, 그들사이에 있었던 오묘한 정치지도자들의 고도의 안목과 정치기술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우리에 개항의지의 유무조차 중국에 의존했는지의 의문과 아쉬움이 컸다. 요즘 한창 남북정상회담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시기에 민족의 주체성과 연관하여 이와 같은 의문을 던져 재고해보고 반성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동아시아는 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외교정치를 펴고 있었다. 또한, 장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정치, 문화 등의 거의 모든 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은 중화사상을 바탕으로한 동아시아의 주변국가를 속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16세기 초부터 서방제국의 동방진출이 시작되었는데, 나중에 중국을 개항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인 영국은 17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주도적인 지위에 서게 되었다. 특히 18세기 중엽에는 인도의 식민지 지배권을 놓고 프랑스와 경쟁하여 승리함으로써, 영국은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건립하고, 동방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가운데 문제가 생기고 만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나라들이 중국산 물건을 원하므로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엄청나게 흘러가고 말았다. 이에 대책을 세운 영국은 은의 유출을 막기위해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여 은을 다시 벌어들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