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신간회의 발자취
- 최초 등록일
- 2004.12.12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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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민족의 정치적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민족적 중심세력의 단결을 요망하는 국민적 기대가 1927년 1월 신간회강령(新幹會綱領) 발표로 구체화된 듯하며 동년 2월에는 신간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 성격을 표방하였으나 민족(民族) 사회(社會) 양 계통의 제휴로 이루어졌고 합법적인 결사와 비타협적 항쟁을 목표로 한 일제 침략하의 유일한 범국민적 성격을 띤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 성립의 요인을 분석해 보면, 첫째 1924년 이후 만연하기 시작한 사회주의(社會主義) 사상에 눌려온 민족운동은 1926년 6·10만세운동을 계기로 서서히 열세를 만회하여 민족주의 지도층에서는 민족운동 대표기관의 탄생을 그 어느 때보다 열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간회 성립의 지도체는 조선일보계(朝鮮日報系)의 신석우(申錫雨) 등이었다. 신석우는 처음에 자치운동을 위하여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와 제휴하였으나 반응이 뚜렷치 않아 화요회(火曜會) 등과 타협하였으며 천도교 구파의 권동진(權東鎭) 등과도 제휴하여 민족주의 좌파적 경향을 띠고 신간회를 성립시키는데 능동적 역할을 담당하다. 한편 신석우(申錫雨)는 당시 조선일보사의 경영난 때문에 호남 등의 재벌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일로 이 운동이 성립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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