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이해] 철도와 한국 근대사
- 최초 등록일
- 2004.12.06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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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철도가 등장하기 전까지 조선은 각지역간의 의사소통망은 보부상과 장시에 의존하고 있었다. 보부상은 물건을 가지고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하던 상인으로써 전국을 떠돌아다님으로 인해 이 당시에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장시는 정보가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였다. 중앙정부는 왕의 윤음, 정령등 정부의 시책을 반포, 홍보하는 장소로 장시를 이용하였고, 장시는 백성들의 동태를 관찰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러한 보부상과 장시의 정보매체가 철도가 등장함에 따라 철도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인력이나 축력 대신에 증기력이 육상 교통수단의 권좌를 차지하고 장시 이외에 기차 정거장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떠오른다. 보행 교통시대의 역사적 산물이었던 보부상은 개화기 시대에 어용단체로서 체제 내로 흡수되고 만다. 철도가 경제적 공간을 재편성하면서 전통 장시는 신흥 상권에 멀어지면서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철도가 보부상과 장시를 밀어내고 근대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성의 감각’에서 찾을수 있다. 철도를 통해 부산의 풍물과 소문이 멀리 북방의 신의주와 회령까지 빠르게 전파됨으로써 사람들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역적 폐쇄성이 점차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공통의 생활감각을 획득하게 된다. 더 나아가 철도는 중세적인 농촌 공동체의 질서를 넘어서 민족적 일체감을 형성하게 했다. 그리고 철도역이 시장을 대신하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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