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남북한의 분단과정
- 최초 등록일
- 2004.12.05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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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쓴 레포트이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의견은 많지 않고 사실과 사료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차
1. 해방 그리고 건국준비위원회
2. 미군정 실시
① 소련군 북한 진주
② 미군 38선 이남 진주와 미군정
③ 미군정의 통치방향
④ 미군정-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3. 해방 후 정치세력 동향
① 건국 준비 위원회
② 조선 공산당
③ 한국 민주당
④ 중경의 임시정부
⑤ 이승만
⑥ 연안 독립동맹
⑦ 항일 빨치산 세력
4. 모스크바 3상회의
① 신탁통치
② 반탁운동
③ 좌우대립
5. 미소공동위원회
①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② 휴회와 탐색
③ 좌우 합작
④ 제 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좌우합작 위원회 해체
6. 단독정부 - 분단
① 남북협상
② 단독 정부를 둘러싼 갈등
7. 통일로 가는 길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제의 악랄한 억압과 수탈 때문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은 해방을 맞아 새로운 희망에 벅찼다. 나라 안에는 이러저러한 새나라 건설 방안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가운데 해방을 가장 주도적으로 맞이한 세력은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 동맹이었다.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안 조선총독부는 해방 후 일본인(민간인 80만, 군인 10만)의 안전 문제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조선인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운형을 찾아 안전 문제를 협의하였다. 여운형은 총독부에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감옥에 있는 모든 애국자의 석방’, ‘3개월분의 식량 확보’, 그리고 ‘치안의 장악’이었다. 다급해진 일제는 곧바로 이를 받아 들였다.
여운형은 일을 서둘렀다. 8월 15일 저녁 ‘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여운형이 위원장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였던 안재홍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치안의 확보’, ‘건국사업을 위한 민족 총 역량의 일원화’, ‘교통, 통신, 금융, 식량 대책의 강구’를 목표로 하는 좌우 연합의 일종의 통일전선체였다.
8월 16일에는 위원회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조선 동포여!
중대한 현 단계에 있어 절대의 자중과 안정을 요청한다. 우리들의 장래에 광명이 있으니 경거망동은 절대의 금물이다. 제위의 一語一動이 민족의 장래에 지대한 영향 있는 것을 猛省하라. 절대의 자중으로 지도층의 포고에 따르기를 유의하라.
건국준비위원회
참고 자료
① “한국 분단사 연구” / 신복룡 지음 / 한울 2001
② “격동의 해방 3년” / 최영희 지음 / 한림대학교 출판부 1996
③ “해방 전후사의 바른 이해” / 허재일, 정차근 지음 / 평민사 1991
④ “해방 정국과 조선 혁명론” / 해방 3년 연구회 지음 / 대야 출판사 1988
⑤ “한국 현대사의 올바른 인식” / 동방원서 1993
⑥ “미군 점령 4년사” / 송광성 지음 / 한울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