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양반의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4.12.0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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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I. 양반의 개념
Ⅱ.양반의 특권
Ⅲ.고려, 조선시대 양반의 차이점
Ⅳ. 양반의 유교적특징
1. 유교이념과 조선의 양반사회
2. 유교적 가부장 사회의 몇 가지 특징
Ⅴ.문학작품을 통해서 본 양반
※ 참 고문 헌
본문내용
양반(兩班)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두 반열을 말한다. 양반이란 용어는 여기서 비롯하였다. 관료층이 지식인관료인 문관(文官)과 무예에 종사하는 무신(武臣)으로 분화된 것이다. 이들은 조회(朝會)때에 북쪽에 앉아서 남쪽을 바라보는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 서는 반열을 문반 또는 동반(東班), 서쪽에 서는 반열을 무반 또는 서반(西班)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남쪽에 서는 반열로서 고려시대에 서리들의 남반(南班)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반열은 동·서 양반에 눌려 남행(南行)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므로 양반은 문·무 두 직능을 가진 관료군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는 신분제사회였다. 그러므로 문·무양반의 가족·친족들도 지배층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양반은 지배층을 의미하는 신분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양반신분층은 고려시대부터 생기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문·무의 직능별 구별이 없었다. 양반은 당나라제도를 본받아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의 양반에 편입된 사람은 왕건을 따라 공을 세운 공신이나 왕건을 지지한 호조세력, 또는 과거시험을 거쳐 관료가 된 호족(뒤에 향리)의 자제들이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고려 광종조부터는 과거제도를 실시하였다. 과거시험의 최종 시험관은 국왕이었다. 그러므로 과거관료는 국왕에게 충성하게 되어 있었다. 관료가 되는 길 중에는 혈통과 능력이 있었다. 고위관료의 아들과 손자, 조카와 사위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과거시험을 치루지 않고도 음직(蔭職)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능력있는 사람은 과거시험을 통하여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고려 이후의 관료는 이 두 부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음직을 받은 사람이 이미 관품을 가진채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성적에 따라 더 높은 관직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귀족자제들이 더 유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현직관료인 음직자들이 과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 놓았기 때문에 관직은 세전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능력만 있으면 귀족자제가 아니라도 과거시험을 통하여 관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피가 관료사회로 흘러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양반귀족자제들이 교육여건이나 조상의 음덕이 있어 출세가 빨랐던 것은 사실이다.
참고 자료
1. 국가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