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종대왕의 정치와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4.11.22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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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ㄷㄷ
목차
I.서론
II.본론
1.가계
2. 유교정치의 기틀마련
3. 세종대왕의 편찬사업
4. 훈민정음
5. 기술서적의 편찬
III.결론
본문내용
세종대에 전개된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은 이 시대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데 기본이 되었다. 이 사업을 통하여 문화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정리가 이루어졌고 정치․제도의 기틀이 잡혀갔다. 이 사업의 주도자는 물론 세종이었고, 이 일을 담당한 것은 집현전과 여기에 소속된 학자들이었다.
유교정치를 표방한 조선은 개국초부터 억불책을 써왔고, 태종대에는 더욱 강화하였다. 세종도 불교에 대한 시책은 선대의 것을 따랐다. 왕실 중심의 기우(祈雨)․구병(救病)․명복(冥福) 등을 위한 불사(佛事)는 세종대에도 계속 이루어졌다. 세종은 유신(儒臣)들의 극단적인 불교전폐론에도 불구하고 조종상전(祖宗相傳)의 불교를 급히 없앨 수는 없다는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불교의 세속권을 재정리할 필요를 느껴 세종 1년에는 사사노비(寺社奴婢)를 정리하여 국가에 귀속시켰고, 세종 6년에는 불교의 종파를 선교(禪敎)양종으로 병합하였으며, 사사(寺社)․사사전․상주승(常住僧)의 액수를 재정리하였다. 즉, 선교 양종에 각 18사(寺)합 36사를 본사로 인정하고, 사원전은7, 760결(結), 상주승 3, 600인으로 삭감, 정리되었다. 법석송경(法席誦經)과 도성(都城)안에서의 경행(經行)도 파하였고, 궐내의 연등행사도 없앴으며, 여항(閭巷)에서의 연등도 승사(僧舍)이외에서는 일체 금하였다. 이처럼 세종의 불교에 대한 시책은 불교의 세속권의 정리․약화와 불교행사의 제한으로 나타났으나 왕실과 세종 개인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
- 논문 [세종대왕의 정치 지도력] 호남정치학회 김재영
- 세종대왕의 정치철학 / 조남욱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