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단군에 대한 시각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4.11.19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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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대․고려시대의 단군
2. 조선 전기의 단군
3. 조선 후기의 단군
4. 일제시대의 단군
5. 오늘의 단군
본문내용
1. 고대․고려시대의 단군
단군은 처음부터 민족시조(民族始祖)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처음에 수많은 열국이 차츰 통합되면서 4국(고구려․백제․신라․가야)이 되고, 4국이 다시 합쳐져서 3구구(고구려․백제․신라)이 되었으며, 삼국은 뒤에 2국(신라․발해)으로 통합되었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고려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도 하나의 통합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아직 뚜렷하지 않아 고구려 계승의식과 신라 계승의식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다. 물론 언어와 풍습등에서 서로 공통점이 많아 어느 정도의 문화 동질의식은 있었지만, 전체 주민이 하나의 시조를 떠받드는 혈연공동체라는 생각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각각 자신의 시조신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단군을 시조신의 하나로 숭배한 나라는 고구려뿐인것같다. 구당서(舊唐書), 북사(北史), 양서(梁書), 등 중국측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10월의 동맹제천(東盟祭天)에서 별(靈星神), 태양(日神), 가한(可汗), 수신(神), 하백녀(河伯女), 주몽(朱蒙), 기자(箕子) 등을 제사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서 단군에 해당하는 것이 가한(可汗)이 아난가 추측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동천왕(東川王) 21년 기사에도 "평양은 본시 선인왕검(仙人王儉)이 살던 곳이다"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에서 선인왕검은 단군을 가리킨다고 보이므로 고구려가 단군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에서 단군신앙이 중앙에 있었다는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