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사] 세키노 타다시(관야정)
- 최초 등록일
- 2004.11.1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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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키노타다시에 대한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의 내용입니다..
제가 꼬박 1주일 걸려서 작업한 내용이구요..
맘에 드실겁니다..
목차
1. 세키노 타다시에 대하여
2. 세키노 타다시 저서의 내용
(1) <한국건축조사보고>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나?
(2) 조선미술사
3. 한국미술사...세키노 극복가능한가?
본문내용
지금부터 딱 100년 전인 1904년은 무엇보다도 러일전쟁으로 기억되는 해이다. 망국의 도화선이 된 '한일의정서'가 교환된 것도, 정로환(征露丸)이 등장했던 것도,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도, 경부선의 공사가 완료된 것도, 경의선이 착공된 것도,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것도, 친일단체의 대명사 '일진회'가 만들어진 것도 모두 그 해에 있었던 일들이다.그런데 이것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흔히 조선고적조사의 효시라고 일컫는 <한국건축조사보고>가 나온 것도 바로 1904년이었다. '동경제국대학 공과대학 학술보고 제6호'라는 표제를 달아 등장한 이 보고서를 제출한 이는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였다35세의 청년학자였던 그가 동경제대 조교수의 신분으로 이 땅에 처음 건너온 것은 1902년 여름이었다. 그 해 7월 5일 인천에 상륙하여 9월 4일 부산을 떠날 때까지 62일간에 걸쳐 서울, 개성, 부산, 경주, 해인사 등지의 고건축과 유물들을 살펴보았고, 그 후 1년 반 가량의 정리작업을 거쳐 1904년 7월에 정식으로 출간한 것이 이 보고서였다.말하자면 조선의 문화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수집은 그때부터 벌써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조선미술사 연구의 첫머리를 장식한 그의 보고서를 뒤져보면, 조선건축에 대한 평가가 가히 오류와 편견과 폄하 일색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