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 십자군 원정
- 최초 등록일
- 2004.11.18
- 최종 저작일
- 2004.11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십자군 전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들어있어요
많이 참고 하세요~
목차
1. 십자군 원정의 원인
2. 클레르몽 공의회
3. 십자군 전쟁의 발발
4. 십자군 전쟁의 진행과정
5. 제 4차 십자군 전쟁
6. 십자군 전쟁의 의의
7. 십자군 전쟁을 쓰고 난 후기
본문내용
십자군의 정규편성은 1096년에 첨으로 제 1차 원정군이 출발했다. 1차 원정군들은 프랑스 노르망디와 툴루즈, 그리고 독일 일부지역에서 모인 기사들과 보병들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 티노플에 집결하여 투르크로 쳐들어갔다. 첨에는 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예루살렘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열광하더니 성가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학살을 자행했다.
제 1차 원정은 그리스도인들의 대승리로 끝났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왕국을 건설했는데 이를 예루살렘-라틴 왕국 또는 예루살렘 왕국이라고 한다.
유럽은 온통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1144년 투르크 군이 예루살렘 왕국 동북방에 위치한 에데사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라는 유명한 설교사가 열변을 토하고, 군중들이 이에 호응해서 제 2차 십자군이 편성되었다. 그러나 2차 십자군은 싸우기도 전에 적전분열 양상을 보였다. 프랑스 왕 루이 7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 3세 등이 2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는데, 비잔틴 황제 마누엘 1세가 그들을 의심했고,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질투심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투르크는 오랫동안의 내분으로 약화되었으나, 살라딘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아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이집트와 시리아, 북이라크를 합쳐 십자군에 참전에 나라에 대한 포위를 강화했다. 그는 지하트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성지 예루살렘이 88여 년 만에 다시 이슬람 교도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유럽을 들끓게 만들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는 나이가 아주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출발했지만, 소아시아에서 강을 건너다 익사하는 바람에 그의 휘하 기사들은 되돌아갔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예루살렘 왕국의 아크르를 합동작전으로 포위했으나, 두 왕 사이에 불화가 새기자, 필리프 2세가 혼자 잘해보라면서 아크레 함락 후 귀국해버렸다. 혼자 남은 사자왕 리처드는 당대의 영웅이며 전략가인 아랍 판 제갈량 살라딘의 적수가 되지 못해, 결국 1192년에 휴전했다.
참고 자료
레포트에 다 적혀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