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경운궁] 경운궁
- 최초 등록일
- 2004.11.08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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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창한 주말에 직접 가서 찍은 고해상도 사진에 각 건물의 역사와 명칭 문과 창호의 명칭 처마의 구조 등 공간과 시간에 충실한 글입니다. 위에 추천한 책을 합쳐 10여가지 책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참고로 하였습니다. 잉크젯 전용지에 칼라로 출력한다면 정말 멋진 출력이 나옵니다. 참고 사항으로 석조전, 정관헌등의 서양 건물에 대한 내용은 넣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어진 레포트가 덕수궁 답사가 아니었고 고궁에서의 한국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양건물에 대한 건은 뺐습니다. 만약 자료가 더 필요하신 분들이 추천 책들을 읽어 보신다면 석조전이 얼마나 경운궁의 가치를 떨어트리는지 알 수 있으실겁니다.
목차
경운궁 역사
경운궁 둘러보기
-중화문, 중화전,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답사 후기
본문내용
경운궁(慶運宮)의 역사
1592년 4월 말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의주까지 몽진(蒙塵)하였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 서울의 궁궐은 모두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선조와 왕실은 정릉동 일대에 남아 있는 왕족과 고위 관료들의 사가 몇 채를 빌려 쓰지 않을 수 없었다-본래 이곳은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가 자리잡고 있던곳이다. 그러면서 그 집들은 '정릉동 행궁(行宮)'으로 불렸다-「선조실록」권43 선조26년 10월 1일 신사조. 상이 경사(京師)로 돌아와서 정릉동(貞陵洞)에 있는 고 월산대군의 집을 행궁으로 삼다. '경운궁(慶運宮)'은 1611년(광해군 3) 광해군이 창덕궁을 증건하고 임시로 그리로 이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광해군은 창덕궁으로 갔다가 도로 경운궁으로 돌아와서 몇 년을 더 머물다가 1615년(광해군 7)창덕궁으로 아주 이어하였다. 그렇게 되자 경운궁은 그저 한때 국왕이 머물던 추억을 간직한 채 200여년 동안은 비어있었다. 그 터에는 행국으로 쓰던 당시의 건물로 즉조당, 석어당 등 두어 채만이 남아 있었고, 왕비의 토지를 관리하는 궁방(宮房)인 명례궁 건물이 몇 채 더 들어서 있는 정도였다.
참고 자료
고궁산책 / 허균 지음.
발행사항 서울 : 교보문고 , 1999.
韓國의 古宮 /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編.
발행사항 [서울] : 韓國文化財保護協會, 1980.
조선의 궁궐 / 신영훈 저 ; [金大璧 사진].
발행사항 서울 : 朝鮮日報社 , 1998.
덕수궁 : 경운궁 / 김순일 글 ; 김종섭 사진
발행사항 서울 : 대원사, 1991
우리 궁궐 이야기 / 홍순민 지음.
발행사항 서울 : 청년사 , 2002
조선의 문과 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