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론] 작가 임선규론
- 최초 등록일
- 2004.10.25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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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임선규의 생애와 대표작
2.임선규 연구사 검토
3.대중극의 특성과 발전
4.동양극장과 임선규
5.<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작품 분석
1)멜로드라마적 구성
2)삼각관계 플롯
3)사랑의 가변성
4)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불가능성
본문내용
[4] 동양극장과 임선규
1935년 10월에 준공된 한국 최초의 연극전용 상설극장으로 배구자악극단을 이끌던 배구자(裵龜子)와 그 남편 홍순언(洪淳彦)이 19만 5천원을 출자하고 작가 최독견(崔獨鵑)이 협력하여 건립하였다. 당시 서대문구 충정로 1가 62번지 소재의 대지 4백 88평에 건평 3백 73평의 2층 건물로 건축되었고 648석의 객석에 회전무대와 호리존트(창공벽)까지 갖춘 초현대식 시설의 연극전문 극장이었다.
동양극장의 연극은 그 내용면에서는 통속성을 통한 상업주의를 지향했으나 연기면에서는 이전 신파극의 과장된 신파조를 지양하여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에 근접했다. 원칙적으로는 번역 작품을 상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였고, 작품의 성향은 주로 체루적인 사건과 화류계의 비애, 또는 청춘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높은 수준의 격조는 갖추지 못했지만 거의가 일반 대중의 정서에 공감이 가는 내용을 썼기 때문에 관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국연극은 동양극장에 이르러 비로소 잘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연극을 제대로 공급하는 ‘상업주의’가 실현되었고 연극 종사자들도 전문적인 직업인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동양극장은 1938년 5월 홍순언의 사망으로 경영난에 부닥친 배구자가 경영권을 최독견에게 넘기고 연기자의 일부가 탈퇴하여 ‘아랑(阿娘)’을 조직함으로써 쇠퇴기를 걷게 되지만, 1941년 11월 전속극단 호화선을 ‘성군(星群)’으로 개편하여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등 꾸준히 대중극의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동양극장은 해방 후 영화관으로 쓰이다가 1976년 2월에 경영난으로 폐관되었다. 그 이후 1990년 2월 27일에 현대건설측에 의해 해체되고 그 자리에는 문화일보 사옥이 들어서 있다.
참고 자료
1)한국극예술학회, <한국현대대표희곡선집 1>, 월인, 1999
2)한국극예술학회, <한국극예술연구 제 5집>, 태학사, 1995
3)김미도, <한국근대극의 재조명>, 현대미학사, 1995
4)이홍우, <한국현대희곡론>, 월인, 1999
5)박선영, <임선규 희곡의 공간구조 연구>, 연세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1
6)양승국 교수의 한국 연극학 교실
7)http://profyang.ms98.net
8)텍스트코리아 한국연극관 http://www.text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