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황조가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4.10.24
- 최종 저작일
- 2004.06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에이쁠러스 받은 자료입니다.
1500원 투자해서 장학금 타세요.
목차
Ⅰ. 서론
1. 황조가와 그 배경설화
2. 황조가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
Ⅱ. 본론
1. 작자에 관한 논의와 본인의 생각
2. 시가양식에 관한 논의와 본인의 생각
Ⅲ. 결론
본문내용
<황조가>는 유리왕의 설화에 나오는 삽입가요로 <구지가>가 주술적인 집단 무요(蕪要)의 성격을 띤 시가임에 반하여 이는 고대인의 이별을 소박하게 노래한 개인적 서정시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창작자나 창작연대, 시가양식 등 다양한 범주에서 상이한 이견들이 제기되고 있는 작품으로 이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과정을 통해 <황조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황조가와 그 배경설화를 간단히 살펴본 후에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요 이설(異說)들을 제시해 보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자 한다.
1. 황조가와 그 배경설화
황조가는 고구려 개국영웅인 동명성왕의 적자로써 고구려의 두 번째 임금인 유리왕(琉璃王)이 서기 17년에 지은 노래로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노래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황조가의 배경설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리왕은 왕비 송씨가 일찍 서거하자, 곧 두 여인을 계실(繼室)로 맞아들였다. 하나는 골천 사람의 딸 화희(禾姬)였고, 하나는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였다.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는데 왕이 양곡(凉谷)의 동서에 동궁(東宮)과 서궁(西宮), 두 궁전을 짓고 각각 살게 했을 정도로 싸움이 잦았다. 훗날 왕은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가게 되어 7일 동안 왕궁을 비워 두었는데 이 사이 두 여자는 또 싸우게 되었다. 이때, 화희가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으로 무례함이 어찌 그리 심한가?" 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마음이 상해 제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좇아갔으나 화가 난 치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하릴없이 돌아오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뭇가지에 꾀꼬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왕이 이를 보고 느낀 바 있어 노래를 불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조>」
참고 자료
장덕순 <이야기 국문학사> 새문사
정병욱 <한국 고전 시가론>, 신구문화사
김학성, 권두성 <고전 시가론>, 새문사
황패강, 윤원식 <한국고대가요>, 새문사
권영철 “황조가 신연구” <승전어문학 5>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