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사)] 한훤당 김굉필
- 최초 등록일
- 2004.10.11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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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굉필의 생애
1) 정치적
2) 학문,사상적
2. 영남사림과 김굉필
3. 김굉필의 사상
1) 소학동자 김굉필
2) 김굉필의 한빙계
3) 선비정신의 김굉필
4. 도동서원
Ⅲ. 결론
본문내용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 영남사림이며 도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유학의 근본목적인 수기치인(修己治人)에 관련된 성리학적 의리를 이전의 어느 때 보다 실천하려 하였고 교육에 대해서도 신성한 사명을 지녀 후학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김굉필의 학문 활동은 대체로 도학적 원리의 구명과 실천적 가치의 구현에 편중되었다. 그는 성리학의 실천철학인 도학(道學)을 강조하였고 그것은 《소학(小學)》의 중시로 나타났다. 15세기 이후 《소학》을 바탕으로 실천 철학을 실행함으로써 도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영남사림으로의 김굉필의 삶과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김굉필의 생애
1) 정치적
김굉필은 1454년 서울 정릉에서 김 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471년 21세 되던 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기 시작하여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조금 늦은 41세 때 처음 참봉의 벼슬을 받았으며 사헌부 감찰 등을 지낸 뒤 형조좌랑으로 있을 때인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를 당하였다. 조선시대에 성종의 도학정치를 도운 김종직(1431~1492 ), 본관 선산, 훗날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조의제문』 파동으로 물러날 때까지 자신의 문하들과 힘을 합쳐 성종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때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결성하였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순천에 유배된 후 5년간에 걸쳐 그의 학문을 전수하던 중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인해 마침내 순천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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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진, 한국사회사 연구, 지식산업사, 1986, p253-288
․ 윤사순, 한국유학사상론, 열음사, 1986,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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