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표현] 이분법적 사유를 넘어서
- 최초 등록일
- 2004.10.1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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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분법적 사유에 대해 깊은 논의 후 쓴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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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 보수와 진보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종종,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이분법을 접하고 산다. 위에 든 예처럼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삶 속에도 이분법은 스며들어있다.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너와 나 - 이런 것들도 이분법의 한 예이다. TV에서 종종 보는 찬반토론회도 어찌 보면 이분법적 사유이다. 사전에서는 이분법을 어떤 대상을 둘로 나누는 논리적 구분의 방법. 즉 만물을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는 따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분법은 양분법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분법은 둘 중 하나를 취한다는 점에서 양분법과 다르다. 다시 말해 이분법은 배타적 선택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얼핏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쉽고 명료한 방법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이분법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졌다. 딱 둘로 쪼개 이해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둘로 나눠서만 생각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는 디지털세계의 사진의 정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사진이라 하면 필름에 맺힌 상을 현상과 인화적업을 통해 결과물로 나타내는 것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발명되면서 더 이상 필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진이 등장했으며 이러한 사진은 그래픽과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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