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주요인물] 등소평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4.09.13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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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등소평의 일생은 현대중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말 정권을 잡은 이래 중국식 사회주의로 오늘날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져오게 했으며, 중국 공산당에서의 활동부터 항일전쟁, 국공내전, 문화혁명 등 중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에는 항상 등소평이 있어 왔기에 그의 치열했던 삶이 곧 중국의 근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20년 약관 16세에 공산당원이 된 등소평은 모택동과 함께 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주역이었다. 그후 실용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가로 모택동의 이데올로기 우선주의와 대립했다. 이 때문에 등소평은 60년대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실각,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중략)
중국에서도, 그 외의 국가에서도 1980년대 중국 지도자는 등소평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 위치는 공적인 지위가 아니었다. 그는 중앙위원회의 주석이나 총서기도, 정부의 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에 유소기가 차지하고 있던 국가주석의 자리를 차지한 것도 아니었다. 국가의 지도자라는 지위는 다름 아닌 그의 권위에 유래하는 것이었다. 그 권위는 그의 경력과 지도자로서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책입안자, 국가의 대변인, 그리고 투사로서 지금까지 그가 쌓아 온 업적에 의한 것이었다.
지도자로서의 등소평의 스타일은 모택동과는 전혀 달랐다. 모택동은 동료들에게서 초연했던 것에 비해, 등소평은 동료들과의 접촉을 잊지 않았다. 모택동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등소평은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했다. 또 모택동은 때때로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조종했지만, 등소평은 언제나 구체적이었으며 원리를 논할 때조차도 그랬다. 그러나 등소평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스타일의 문제를 훨씬 초월한 것에 있었다. 그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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