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 28조
- 최초 등록일
- 2004.08.29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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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무28조에 관해 정리했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시무28조의 주요 내용
Ⅲ. 시무28조의 분석
1. 국방관계의 문제
2. 불교의 폐단에 대한 문제
3. 사회문제
4. 왕실과 관련된 문제
5.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문제
Ⅳ. 최승로의 사상
Ⅴ. 나오는 글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글
고려를 규정짓는 여러 잣대 중에 고려를 귀족사회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물론 고려의 건국부터 시작하여 멸망 이전까지 귀족중심의 사회가 이루어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왕권이 고려를 건국한때부터 고려의 집권을 위한 준비단계 혹은 호족 연합 정권기 라고 구분한다.
고려시기에 유교는 과거로 진출한 문신들의 실용적 교양이며 사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으며, 정치이념을 제공하였다. 이에 반해 불교는 당시인의 신앙생활이나 내면 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고려시기에 유교적인 정치이념은 국초부터 제기되고 있었지만, 그것이 집약되어 표현된 것은 성종대의 최승로(崔承老)의 시무28조였다.
최승로는 본래 경주 출신으로 신라가 고려에 항복할 때 아버지와 함께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들어왔다. 12세 때(938) 태조에 부름을 받아가서 논어를 읽고 칭찬을 받았으며. 그때 태조는 그에게 원봉성(元鳳省) 학생에 속하게 하였다. 광종때의 정치적 격동기에도 여전히 국가의 문한을 맡고 있어서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짓기도 하였다. 성종이 즉위하면서 인사를 담당하는 선관(選官)의 장관인 어사(御事)가 되었다. 성종 원년에 경관(京官) 5품 이상은 각기 봉사를 올려 시정의 득실을 논하라는 왕명에 응하여 28조에 달하는 소문(疏文)을 올렸는데, 이것은 유명한 시무책(時務策)이다. 최승로의 상서문은 오조정적평(五朝政績評)과 시무28조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조정적평은 태조에서 혜종 정종 광종 경종조에 이르는 5조의 정치에 대하여 잘잘못을 본받을 것과 경계할 것을 성종에게 권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오조에 대한 평가에 이어, 구체적인 시무책을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모두 28조였으나, 현재는 22조만이 전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