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이해] 무용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4.07.15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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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용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들으며 했던 과제입니다. 무용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구요..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한국무용의 역사
1)상고시대의 무용
2)삼한시대의 무용
3)삼국시대의 무용
4)고려시대의 무용
5)조선시대의 무용
6)근대의 무용
7)한국무용의 특징
2. 서양무용의 역사
1)원시시대의 무용
2)고대의 무용
-이집트의 무용
-그리스의 무용
-로마의 무용
3)중세의 무용
4)근세의 무용
5)근대의 무용
6)현대의 무용
본문내용
한국 무용의 연원은 단군 이후 각 지방에서 소도회(蘇塗會 : 솟대)를 개설하고 매년 정월과 10월 상달에 부락민들이 함께 모여 신단(神壇)에 제사하고 춤과 음악으로 즐기던 풍속이 있었다. 이 때의 무용은 개인적·정서적이라기 보다는 전체적이고 집단적인 제의(祭衣) 밑에서 하나의 의식으로써 또는 행사의 절차로써 행하던 원시적 집단 가무(集團 歌舞)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무용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3세기 경에 기록된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과 그 밖의 중국 사적(史籍)의 단편적 기록들에 의하면, 한반도(韓半島)의 여러 부족들은 1년에 1회 또는 2회의 제천 대회(祭天 大會)를 열고, 제천과 아울러 부족 의식(部族 儀式)을 연마하며, 가무 백희(歌舞百戱)를 연행(連行)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들 중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예(濊)의 무천(舞天), 마한(馬韓)의 춘추제(春秋祭), 가락(駕洛)의 계욕 등은 거족적인 행사였다. 또한 마한에서는 5월 하종(下種)이 끝났을 때와 10월 농사일을 끝마쳤을 때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많은 백성들이 모여 주야로 가무 음주(歌舞 飮酒)를 하였다. 이 때 여러 사람이 일제히 장단에 맞추어 답지저앙(踏地低昻)하면서 절주(節奏) 있게 추었던 춤은 중국의 탁무(鐸舞 : 방울춤)와 비슷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춤은 아직 완전한 격식이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수세기 동안 반복 시행되는 사이에 차차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고, 의식의 한 절차로 발전·형식화되고 정착되어갔다. 그 후 왕권 정치의 본격적인 틀이 잡힌 삼국 시대 이후로 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무용 본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궁중에서는 전문 무용가를 두어 국가적 행사와 의식 또는 경축 등에 춤을 추게 했다. 그리하여 궁궐에서는 연례용(宴禮用)으로 쓰이게 되었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그리고 조선 시대를 통하여 외래 문물의 교류에 따라 무용도 이입(移入)이 많이 이루어졌으나, 모두 우리의 감정에 맞게 고쳐지고 재구성되어 수십 종의 무용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무용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추어지던 춤인 정재(呈才)와 민간에서 주로 추어지던 춤인 민속무(民俗舞)가 있는데, 이 둘을 통틀어 근대 무용의 대칭(對稱)으로 전통 무용이라 부르고 있다.
근대 무용은 1900년대 이후 서구 문화의 수입에 힘입어 서양식 극장 무대〔원각사(圓覺社)〕가 생기면서부터 본격적인 외국 무용이 소개되었다. 이 때에 신무용(新舞踊)과 더불어 발레, 러시아춤 등이 공연되고, 전통 무용도 무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올려졌다. 이렇듯 한국 전통 예술의 발생은 의식적(儀式的)이며, 종교적(宗敎的)인 행사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창제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본래의 목적인 의식 절차와 행사는 약화되고, 그에 따른 춤이나 음악만이 반복 사용되는 동안 본래에 용도와는 달리 독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서 그 속(작품)에 진실과 아름다움을 담은 채 남아 오늘<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