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판소리
- 최초 등록일
- 2004.06.28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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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판소리를 생성시킨 주도 세력은 한강 이남의 시나위권,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격(巫覡)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시나위권의 단골(丹骨)들이 부르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는 그 연행 형태, 장단, 음조 등에서 판소리와 유사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17세기,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중세적 격변기를 거치며 급격히 성장한 평민층의 현실적인 불만과 욕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하층의 천민으로서 신분 변화를 꿈꾸던 무격(巫覡)들의 이상이 결합하여 판소리라는 새로운 민속 예술이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유래에 관한 학설로는 무가기원설, 육자백이토리설, 판놀음기원설, 광대소리기원설 등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영조 30년(1754년)에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이 지은『만화집(晩華集)』의 <춘향가(春香歌)> 한시(漢詩) 사설 200구(句)이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늦어도 정,순조 때는 12종의 판소리 바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廣大)와 재인(才人)들을 불러 3일유가(三日遊街)하고 홍패고사(紅牌告祀)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정조 때의 가난한 선비였던 송만재(宋晩載)는 잔치를 베풀 수 없었으므로 글로 대신하였는데 그 글이『관우희(觀優戱)』다. 관우희(觀優戱)에는 <심청가>,<춘향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장끼타령>,<옹고집>,<왈자타령>( 무숙이타령),<강릉매화전>,<가짜신선타령>( 숙영낭자전) 등 12바탕의 판소리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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