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후기 광업과 수공업
- 최초 등록일
- 2004.06.15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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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관청수공업의 변화
2. 민간수공업의 발전
3. 광업의 발달
본문내용
1. 관청수공업의 변화
◉장인등록제의 붕괴
무기와 관수품(官需品) 그리고 귀족들의 생활품을 제조하는 관청수공업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성립되어 신라․고려시대를 통해 조선시대까지 계속 발전되어 왔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중앙의 30개 관청과 지방의 8도 감영이 모두 크고 작은 수공업장을 자기고 있었으며 중앙관청에는 129종/ 2,800여명, 지방에는 27종/ 3800여명이 등록되어 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장인들도 국역제(관직에 나가지 않은 모든 인원이 국역에 동원 되는 것)에 따라 모두 관청에 등록되어 일정기간 임금이 아닌 약간의 요(料)를 받고 관청 수공업장에서 부역 동원되었다. 또한 장인들은 관청수공업장에 동원되지 않는 기간에만 자기 생산에 종사할 수 있었고, 장세(匠世)도 부역에 동원되는 기간을 제외하고 부과되었다.
이러한 장인등록제도 16세기가 되면서 일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붕괴 원인은 16세기 조선의 지배체제가 해이해지고 재정사정이 악화되면서 방대한 관청수공업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데도 있었지만, 장인들이 등록제에 의한 부역동원을 기피한데 더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장인의 등록제가 무너져간 사실은 16세기경에 벌써 등록되지 않은 사장(私匠)이 생겨나고 관청수공업장에서도 이들 사장을 고용하게 된 데서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강만길 <한국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