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고려 서민 생활
- 최초 등록일
- 2004.06.1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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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고려시대 농민의 생활
2.고려인의 의식주
3.고려시대 민속놀이
본문내용
농민들이 국가와 지배층에게 바쳐야 하는 조세와 공납, 그리고 요역은 무척 무거운 부담이었다. 게다가 빈번한 홍수나 가뭄 등으로 농민의 처지는 더욱 비참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정부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책을 마련하였다. 농사철에는 농민을 잡역에 동원하지 못하게 했고, 자연 재해 때에는 피해의 양에 따라 조세와 공납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빈민 구제 기관으로 의창을 설치하여 식량이 떨어지는 농사철에 얼마간의 양곡을 농민에게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이자와 함께 걷어들였다. 개경과 서경 및 지방의 12목에는 물가 조절 기구인 상평창을 설치하여, 쌀이나 포를 값이 내렸을 때 사들이고 값이 오르면 싼값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 물가가 지나치게 오르내리는 것을 막았다.
국가 기구 외에 왕실, 귀족, 사원, 관료와 지주 등도 농민들에게 양곡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이자율이 높은 고리대여서 일시적인 도움은 되었지만 부채를 못 갚아 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는 지나친 고리대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자율을 3분의 1로 제한하여, 쌀 한 섬(15말)의 이자를 최고 5말로, 포 1필의 이자를 최고 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빈민 구제 사업이나 고리대의 이자율 제한은 농민의 몰락을 막아 조세를 계속 걷기 위한 미봉적인 농민 보호책이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어서 농민 생활의 불안정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