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04.06.0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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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부 한문학의 대가들과 그 유산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백세의 스승, 김시습
◇구속을 싫어한 진보적 지식인, 허균
◇고독한 한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조선시를 선언한 자주적 시인, 정약용
제 2부 문학과 이념의 거리
◇향가에 실린 불심, 균여대사
◇『삼국유사』의 위대한 서사시인, 일연
◇「도산십이곡」을 지은 동방유학의 스승, 이황
◇고산구곡을 노래한 유학자, 이이
제 3부 자연과 인간, 우리의 노래
◇호남가단의 터잡이, 송순
◇가사문학의 일인자, 정철
◇시조문학의 최고봉, 윤선도
본문내용
제 1부 한문학의 대가들과 그 유산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이규보는 무신집정기를 살아간 신흥사대부의 대표적 인물로 그가 태어난 때도 무신의 난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168년이다. ‘인저’라는 이름과 ‘훈경’이라는 자로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지방의 토착세력층으로 짐작되는데, 무신의 난 이후 새로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성에서 생활하면서 출세를 위해 공부하였는데,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이규보는 계속 과거 준비를 하여 16세에 사마시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그 뒤로도 18세, 20세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낙방하였다. 그러나 22세 되던 해 네 번째 사마시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 하였다. 그 다음 해에 예부시에 응시해 동진사에 뽑혔다. 그러나 그의 삶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천마산으로 들어갔다. 이 때 자신의 호를 ‘백운거사’라 하였는데, “백운처럼 거리낌 없이 거사처럼 도를 닦고자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천마산은 구속을 싫어하던 그에게 문학과 정신수양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공간으로 그의 삶과 문학의 중심 공간이다. 이규보는 ‘사가재’라는 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식량을 마련하고 옷을 마련하며 물을 마실 수 있고 땔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로 손수 정원을 손질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