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최초 등록일
- 2004.05.24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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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종교 – 특히 기독교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설명하고 접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80에 속해 사는 것과 20에 속해 사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겉으로 말하기는 20에 속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의 행동하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 만나는 사람들, 읽는 책들, 공부하는 것들, 꿈꾸며 희망하고 있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80에 속해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럴듯한 위선자 아닌가? 드러나는 즉, 행동과 말에서 그 사람을 경험하고 아는 것인데 대체 어느 정도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말하지 않고 행동하는 스메르쟈꼬프나 떠벌리고 다니는 드미뜨리 모두 너무 위험한데 대체 그 사이에서 몇%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과연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 관계 맺는 것이 드러나는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가? 내가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 오늘의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해도 역사와 철학은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 아닌가? 그리고 살아가는 것의 추진력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꿈과 이상들을 향한 것들 아닌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말 정신적인 진보의 수단은 지혜 깊은 가르침으로써 얻어진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밖에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머릿속을 헤집는 문제들은 모두 시간이 필요해서 지금 당장 답이 보이지 않는 일들이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답이 없는 문제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어떤 스펙트럼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시간이 필요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여전히 힘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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