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백범 김구선생의 독립운동
- 최초 등록일
- 2004.05.11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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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독립운동과 통일운동
3. 반탁운동(反託運動)과 통일국가의 지향(志向)
4. 백범(白凡)의 남북협상(南北協商)
5. 맺음말
6. 나의 견해
본문내용
백범은 임시정부를 수습한 뒤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백범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였다. 1939년에 기강(棊江)에서 좌파 4당의 7당회의를 통하여 통일전선을 모색한다. 계속되는 당회의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전선 정비에 집념을 버리지 않고 1940년에는 중경(重慶)에서 의견이 근접한 우파 정당만의 3당회의를 통합하여 통합한국독립당을 창설한다.
백범의 통일전선 형성의 추진은 1941년 태평양전쟁의 발발 이후에 박차가 가해져. 1942년에 통합의회의 구성과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김원봉)와 임시정부광복군의 통합 개편을 성사시켜 중경에 있는 여러 정당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에 따라 헌법개정을 착수하여 임시정부가 명실공히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또 조국해방에 대비한 체제를 갖추어 갔다.
이러한 백범의 이념은 1941년의 건국강령이나 그를 구체화한 1944년의 헌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1930년 안창호의 대공주의(大公主義)나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 제창이래 임시정부는 줄곧 수정자본주의 또는 민주사회주의의 노선을 추구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임시정부 당면정책(當面政策)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좌우가 대립한 해방정국에서 백범의 임시정부가 통일국가 수립을 주도하는 데 대하여 이념상의 장애는 가장 적은 위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